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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강해 설교문

Halak 202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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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강해 설교문

개요

창세기 1장은 성경의 첫머리를 장식하면서 신앙의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질서와 어둠 속에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질서를 세우시며 모든 피조 세계를 그분의 뜻에 따라 세워 가셨습니다. 창세기 1장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해답을 주려는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한 신학적 선언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이루어졌다”는 반복적 리듬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창조의 권능을 드러냅니다. 일곱 날의 창조 과정은 단순한 시간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며, 마침내 안식으로 완성하신 구속사의 모형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로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성경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철학적 사색이나 과학적 이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원이자 주권자이심을 선포합니다. 태초란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며, 그 이전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존성과 영원성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합니다. 창조는 인간의 공로나 우연적 진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말씀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존재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가 누리는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며, 피조물로서 겸손히 그 앞에 서야 합니다.

혼돈과 공허에서 질서로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조 전의 상태는 무질서, 공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혼돈 가운데 새로운 질서를 준비하시고, 창조의 역사를 인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도 종종 공허와 어둠 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그 공허는 새 생명으로 채워집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성령의 사역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혼돈의 자리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삶은 새로워지고, 무질서는 질서로 바뀝니다. 교회는 이 은혜를 붙잡고, 혼란의 세상 속에서 성령께서 새 창조를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빛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빛의 창조를 넘어, 하나님의 임재와 질서의 상징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혼돈 속에 구별을 만듭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빛은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표상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이라 선포합니다. 창세기의 빛은 곧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신자는 그 빛 가운데 거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하며, 어둠 속에 갇힌 이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궁창과 하늘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사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셨습니다. 궁창은 하늘로 번역되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확립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혼돈의 물이 갈라지고, 생명이 살아갈 공간이 마련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경계를 세우시고 질서를 주시는 하나님임을 드러냅니다. 무한한 자유는 곧 혼돈으로 이어지지만,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만 참 자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경계가 무너진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질서의 기준이 되며, 우리의 삶을 붙잡아 줍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땅과 식물

셋째 날 하나님은 땅을 드러내시고 바다와 구분하셨습니다. 또한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내셨습니다. 씨앗은 생명의 연속성과 번성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이는 창조주께서 세상을 계획하시고 섭리 가운데 보존하신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각기 종류대로”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양성을 창조하시고 존중하심을 보여줍니다. 피조물은 무한한 다양성을 지니면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이 질서를 무너뜨릴 때, 혼란과 파괴가 찾아옵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여 청지기로서 돌보아야 합니다.

 

해와 달과 별

넷째 날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어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계절과 절기를 구분하게 하셨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해와 달과 별은 신격화되어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단순한 “광명체”라 부릅니다. 이는 참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임을 선포하는 강력한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태양이나 달을 신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권력, 돈, 지식, 과학을 절대화하며 의지합니다. 창세기 1장은 이러한 우상을 무너뜨리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경배의 대상임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신자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창조주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바다와 공중의 생물

다섯째 날 하나님은 바다와 공중을 생명으로 채우셨습니다. 물고기와 새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는 창조 세계가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번성하도록 계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복은 단순히 생물학적 번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 전체가 충만하게 자라나는 은혜를 뜻합니다. 교회는 이 복을 이어받은 공동체로서, 세상 가운데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생명력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교회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육지의 생물과 인간

여섯째 날 하나님은 육지의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점에서 다른 피조물과 구별됩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명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음을 뜻합니다. 인간은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지만, 이는 파괴적 지배가 아니라 돌봄의 청지기적 사명입니다. 오늘날 환경 파괴와 인간의 탐욕은 이 사명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신자는 가정과 사회, 교회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안식일의 의미

마침내 일곱째 날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피곤해서 쉰 것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과 질서의 절정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안식은 창조의 목적이며, 인간이 누려야 할 참된 삶의 방향입니다.

안식일은 단순한 노동의 중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거룩한 시간입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참된 안식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단순한 휴식일이 아니라,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입니다. 교회는 예배 속에서 참된 안식을 경험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해야 합니다.

결론적 묵상

창세기 1장은 단순한 창조의 기록이 아니라, 신앙 고백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은 피조물로서 그분의 형상과 사명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여전히 혼돈과 흑암 속에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운행으로 새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창조의 빛을 세상 가운데 비추는 공동체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은 오늘도 우리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안식의 복을 누리며 살라는 부르심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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